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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울여행 3, 노숙인 체험기

서울 여행이라는 말은 이제 조금 어색해졌다.

생존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전쟁과도 같은 말이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 끼니를 걸러야 하고 배가 고프지만 방법은 전혀 없었다.

대형마트를 찾아 시식코너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나마 옷이 깔끔한 터라 노숙인 저럼 보이지 않았기에 손님 접대를 받으며

시식코너에서 돌 수 있었다.

식품매장 한 바퀴를 돌았다. 하지만 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몇 바퀴를 돌아야만 한다. 잔뜩 굶주려 있던 배를 갑자기 채우는데 주로 시식코너에는 고기종류나 햄등이 많기 때문에 빨리 먹다가 채하면 약값이 더 나온다는 선배 노숙인들의 코치 덕분에 먹는 방법을 배워두었다.

시식코너에서 차가운 음식부터 먹어야 하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먹어야 본전을 찾는다는 것이다. 잘못 먹다가 병원신세 지게 되면 안될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 옷차림이 깔끔해서인지 직원들의 시선이 따갑지 않았지만 동료 노숙인 에게는 따가운 시선이 집중되었다. “여자 말고 그 옆좀 봐“

돈 없이 눈치 보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다.

일자리를 찾아 다니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사회운동 이랍시고 감시가 장난이 아닌데다.

정치까지 엮여 맘 편할날이 단 하루도 없던 터였다.

또한 가는 곳마다 기자들까지 포섭하니 그야말로 물샐틈 없는 감시 체제였다.

아니 돈을 벌기 조차 힘든 상황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듯 싶다.

길거리 방황을 많이 하다보면 정신이 몽롱해질 때가 있다.

제대로 먹고 편히 쉬어야 에너지가 재 충전이 되어서 정상의 생활이 되는데

먹는것과 자는것이 옳게 이루어지지 않을때에는 정신적 충격이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경험을 하게된 것이다.

직업소개소에서의 소개 자리를 받는 것도 마땅찮았다.

돈을 쥐고 움직이기에는 일용직 직도 마다 않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더욱 더 그랬다.

영등포 인근에서 배회하다 영등포역 지하철 계단에 5시간쯤 앉아있었다.

어디로 장소를 정해 옮겨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저녁 10시쯤이 되자 어디에선가 뜨거운 바람이 몸을 스치는 기운을 느꼈다.

이상했다. 분명 역사에 불을 뗄리도 만무한데 12월 가까이 따뜻한 바람이라니..

이상해서 계단을 올라가 보았다.

노숙인 친구들이 수 십명이 몰려 들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야지 하는 맘을 먹기에 이른다.

그들과 잠시 대화하자 단속원이 나와서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가라고 버럭 화를 낸다. 옆에 동료들 순식간에 모두가 내편을 들기 시작했다.

적어도 함께 할수 있는 친구들이였다.

어느 단체에서 나왔냐? 또는 사회복지사냐 ? 다양한 형태로

질문을 하며 화를 내던 단속원 나에게 뭐하러 소리 지르나며 단체가 움직여

 항의하는 통에  발을 빼고 가 버리고 말았다.

12시가 넘어서자 더 많은 친구들이 이곳으로 올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 되었다.

서울에서의 생존현장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하고 난 뒤라 이들에게 생존 전쟁과도 같은 하룻밤 경험하기는 경험이 아닌 가슴을 파고드는 동료의식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해 줄 수 있는게 전혀 없다는 현실 앞에서 내가 지금껏 경험하고

뛰었던 현장에서 조직이 없이 혼자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힘겹게 부딪히는 현실이었다.

누구나가 옆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남 말하듯 말 할 수는 있겠으나 지금의 내

곁에서 단 한사람 당장 먹을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 줄 수 없는 상황이 안된다면 혹독한 현실앞에서 누구를 동료라 할 것인가?

 그건 바로 나와 함께 밤을 새고자 이곳까지 온 수십명의 노숙인 친구들이다.

똑같은 마음 똑같은 행동의 일치됨 하나면 충분하다.

종이 박스를 깔아주고 보호해 주고 외부에서 오는 이들을 철저히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해주는 이들에게 언론도 권력도 접근할 수 없었기에 나는 이들을 내 친구라 불렀다.

내가 여자였던 터라 반가웠던지 아니면 동료라 기뻤는지 커피를 뽑아

오겠다던 친구 한사람이 있었다.

 커피를 뽑아 한참을 있다 종이컵을 들고 온 친구는 먼 거리보다 차가웠던 날씨보다 차가웠던 몸의 체온으로 커피를 안고 친구 에게 주려고 빼온 커피 한잔

베풀어 주겠다는 배려의 기쁨에 커피의 온도는 희석 되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친구들의 배려가 이세 상 그 누구의 따스함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새벽 5시 영등포 역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준다고 한다.

얼마나 따뜻하고 맛있었는지 경험을 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럼에도 내일이면 충분히 따뜻할 수 있는 나

그러나 내일이래도 충분히 따뜻하지 못할 친구들

이들의 안식처하나 해 줄 수 없으면서 그들 앞에 서

우리가 준비해 줘야 할 것은 무엇일까?

광주로 내려왔다.

오는날 날 마주하던 젊은이들 "왜 내려왔대?"

" 배가 고파서 왔대잖아"  

젊은 친구들 누구에게 배웠는지...  

공부는 머리로 하는것 보다 체험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판단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펜들고 따라다니기 하지말고 직접 경험 해 보라고 권해주고 싶은데.

 " 피 눈물 안나는지...

몇번 기획 건의 했던 대책안 .. 그 종이들이 지금 따뜻한 방에서 잠자고 있다.

그 종이가 우리 친구들의 침낭이 되었으면 얼마나 따듯했을까?

 

친구들이 깔아준 종이박스가 그리우면 영등포 역으로 오라던 기억이 스친다.

 

그날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지었던 글 한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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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꿈에 그린 커피 속 그림 한 점

 

친구들 함께 숨 쉬며 두루 누워 모여

종이 침낭위에 그린 꿈 한줄기 고향 흙 한 점

밤새 그린 새벽녘 한줌 희망

깊고 진한 나눔의 시간 속에 마음 줄기 찾아

깊은 시간 어둠 발길 찾아 온 커피한잔

커피보다 차가웠던 친구의 몸의 기운이

추운겨울 찬 기온에 섞여 식어져 버린 커피

몸의 차가움 감싸 줄 뜨거운 커피에 그려 넣은

사람의 체온 그리움 품은 마음 한 점

두 손 꼭 모으고  있음 식지 않을

뜨거운 커피 같은 사람의 체온 이

우리 친구들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6년 12월 영등포 역에서 40명의 노숙인 친구 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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